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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일보] “어린이안전재단 필요 없는 세상이 나의 꿈”
작성자 관리자




지난 13일 서울 송파안전체험관에서 만난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이사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수습과 더불어 제대로 된 사고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이사는 19년째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웅덩이’를 찾아왔다. 어른들의 욕심과 무관심이 초래한 안전 불감증 때문에 아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제약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샐러리맨이 어떻게 국내 최초로 어린이 안전 시민단체와 종합안전체험교육장까지 만들게 됐을까.

“‘당신이 유가족 대표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맡게 됐죠.”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송파안전체험교육관에서 만난 고 대표는 이를 ‘숙명’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안전의 ‘안전’도 모르던 평범한 가장은 1999년 6월30일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를 계기로 달라졌다. ‘어린이가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우리 사회를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하늘로 먼저 떠난 두 딸과 함께 숨진 아이들이 남긴 숙제라고 생각했다.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는 예닐곱 살밖에 되지 않은 19명의 유치원생의 목숨을 앗아가 당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부실한 소방시설과 가연성 자재를 사용한 조립식 가건물 등이 화재를 더욱 키웠다. 당대 최고 아이돌 가수인 HOT가 사고 희생자를 위한 ‘아이야(I Yah)’를 타이틀 곡으로 부를 정도로 씨랜드 화재 사고는 어린이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제대로 수습을 안 해줬어요. 사고 초기에는 정부에서 화재 원인도 제대로 밝혀주지 않았고 불법 건축을 승인한 담당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유가족이 중심이 돼 참사의 원인을 파악하고 같은 사고가 재발하는 것을 막고자 재단을 만들었어요.”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은 사고 후 1년 뒤인 2000년 7월 고 대표와 유가족을 중심으로 처음 발족했다. 고 대표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려고 2만장이 넘는 수사기록을 수차례 읽었다. 사고 이틀 만에 발화 원인이 ‘모기향을 비롯한 미상의 활용’이라는 소방당국의 설명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는 화재 원인을 파악하려고 방송사와 함께 수련원 시설과 동등한 조건을 갖춘 모의실험도 진행해 조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했다. 고 대표는 “정부는 화재의 책임을 모기향을 쓴 교사와 아이들에게만 돌리고 사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며 “일부 공무원들은 ‘우리가 (보상) 선례를 남길까 봐 빨리 수습하고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고 말했다. 이미 공소시효가 끝났고 재수사도 할 수 없다는 통보도 받았지만 그때 제대로 밝히지 못한 화재 원인은 여전히 그에게 ‘한’으로 남아 있었다.

지난 3월 재개관한 송파구 마천동의 송파안전체험교육관에는 어린이 안전에 대한 고 대표의 ‘한’과 아이를 키워온 ‘경험’이 곳곳에 녹아 있다. 송파안전체험교육관은 2001년 6월 ‘어린이 안전공원’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세 차례 리모델링을 거쳐 4층 규모의 종합안전체험교육관으로 재탄생했다. 지난해 리모델링으로 지진, 태풍, 선박, 화재, 항공기 등 각종 재난 상황에 대비한 시설을 새롭게 갖췄다. 국내 최초의 어린이 안전교육시설이 송파구에 들어선 것을 계기로 소방청은 2005년부터 전국에 6곳의 안전체험관을 만들었다. 2020년까지 8곳의 안전체험관이 추가로 개소한다.


철도운행 시뮬레이션


선박안전 교육


항공안전 체험


가상현실 교육

다른 재난안전체험관과 달리 가정안전체험과 신변안전체험 등 생활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눈에 띄었다. 송파안전체험교육관 관장을 겸임 중인 고 대표는 “교통사고 못지않게 가정에서 가구 모서리에 부딪히거나 떨어져서 다치는 미취학 아동이 많다”며 “평범한 가정집을 그대로 재현해 아이들이 어떤 경우 다칠 수 있는지 알리고 안전한 가정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을 안내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가 달라지지 않으면 결코 아이들 안전을 지킬 수 없다”며 “아이와 어른이 함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한 해 4만여명이 찾아 안전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하는 종합안전체험관이지만 처음 시작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안전을 교육한다’는 인식조차 낯설던 2001년 고 대표는 서울시에서 마련해준 부지에 컨테이너 두 동을 가져다 놓고 야외에서 어린이 안전 교육을 시작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송파에 추모공원을 왜 짓느냐’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도 설득해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실내 교육장이 없어서 비가 오면 교육받던 아이들도 돌려보내야 해서 매번 미안했다“며 “시설 개선을 위해 수차례 담당 공무원을 만나고 설득한 끝에 실내 교육장, 자전거 교육장 등 건물을 짓고 증축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 대표는 안전교육의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자 대학원을 다니며 논문도 작성했다. 안전교육이 유아의 안전능력에 미치는 영향과 스포츠 지도자의 안전인식이 안전문화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 안전교육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꾸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더는 재난을 운에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운이 없어서, 아이들이 잘못해서 사고를 당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와 우리 가족만 사고를 피해 가면 괜찮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결국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의식과 시스템이 향상되지 않으면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 안전 관련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고 대표가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이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난을 학습하지 않고 수습하려고만 한 결과다. 

대구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침몰 사고 등 각종 재난 사고의 유가족을 도와온 고 대표는 “유족들이 공통으로 원하는 것은 제대로 된 사고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라며 “그때나 지금이나 유가족이 앞장서서 사고 원인을 조사해야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오히려 사고 원인을 둘러싼 정부와 유가족의 공방이 대중에게 ‘피로감’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가족의 진상조사 요구가 언제부터인가 ‘투쟁’이 돼버렸다”며 “정부의 미흡한 정보제공과 부실한 원인 규명이 유가족을 ‘투사’로 만든다”고 안타까워했다.

과거와 다른 시민의 응원과 격려는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된다. 고 대표는 “광화문광장을 갈 때마다 붙어 있는 리본을 보면서 예전 같으면 10명 중 8∼9명은 이제는 그만하자고 리본을 떼자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5∼6명으로 줄어든 거 같다”며 “우리 사회가 인내심을 갖고 유가족을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늘에 있는 아이들을 꿈에서 종종 만나느냐는 질문에 고 대표는 “꿈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때 모습이 선명하다”며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아이들 단 한 명도 잊지 않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생각해보면 제가 제일 괴로운 사람이에요. 지금도 문뜩 사고 현장과 아이들이 생각나서 힘들어요.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죠.” 

고 대표는 “이제는 어린이안전재단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우리 단체가 활발히 활동하는 것은 여전히 어린이들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라는 의미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이 출범한 이후 아동 10만명당 안전사고 사망자 수는 1999년 15.3명에서 2016년 2.8명으로 대폭 줄었다. 

“10년쯤 지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땜질 대책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재난 사고 이후 힘들어하는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한 트라우마 치료에도 힘을 모을 생각입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하늘에 있는 두 딸에게 그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충분해 보였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출처 : http://segye.com/view/2018051800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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